생활 문화

군대에서 곡갱이자루로 40대 매맞은 이야기

盛月 2014. 8. 21. 10:09

나의 군생활 매맞은 이야기                                  

                                                                            

         1979년 초 내가 군대시절에 매맞은 얘기를 할까 한다

          5월 어느 토요일 이노끼라는 별명을 가진 말년 병장이 있었다

          파주 모 병원부대 화물차 운전병으로. 등치가 크 이노끼라는 별명을 ....

 

          토요일 외출을 다녀 온 이노끼 병장이 술에 만취가 되어 내무반에 들어오더니

          큰소리로 모두 집합하라고...

모두들 내무반 침상으로 올라가 일렬행대로 섰다 

 

창고로 가더니 곡갱이 자루를 하나 들고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종아리 5대, 엉덩이 5대, 등 5대, 발바닥 5대 다시 종아리 5대 이렇게 중대원 1인당 총 40대씩을 맞았다 곡갱이 자루가 다 찢어질때까지 맞았다...

 

그래도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그시절 군생활이었다

40여명을 차례로 매질을 하는 모습은 악마와도 같았다.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인사물성 상태로 매질을 했다.

중대원들 모두 온몸에 피멍이 들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종아리가 터지고 정말 아수라장이되었다

밤 내무반은 중대원들의 신음소리로 전쟁터 부상자와 같았다

 

다음 날 일요일 내무반에 인사계가 들어왔다

월요일 유격 훈련 준비를 위해 점검하러 온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중대원 모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는것 아닌가

인사계는 무슨일이냐고 물었지만 우리들은 말 할 수 없었다

 

말했다간 언제 어느때 또 매를 맞을지 모르는상황이기에 말이다.

그 때까지 이노끼 병장은 내무반장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술에 깨어나지 못한것이었다

인사계는 급기야 중대장, 수송관에게 보고하였고    전화를 받은 중대장, 수송관이 급하게 중대로 들어왔다.

 

내일 당장 유격 훈련을 가야하는데 온몸에 피멍이 들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대장에게까지 보고 되어 부대가 비상이 걸린것이다

유격을 못가는 사유가 구타로 인하여 못간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부대장, 중대장, 인사계, 수송관 하사관들이 취사장에서 계란을 가져와

중대원들 침상에 눞혀놓고  온몸에 피멍을 계란으로 풀어보기 위해 마사지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루 종일 마사지 .....

그렇게 매를 맞아도 말한마디 못하고 지내야하는 그시절 군대생활 지금은 생각조차 하기싫다

정말 끔직하다.

 

부대장이 이노끼 병장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중대원들에게 물었다

그렇게 초 죽음이 되도록 맞았는데도 아무도 대답하는 병사가 없었다.

 

이노끼 병장은 전역을 2개월 앞둔 말년병장이었다

이노끼 병장은 울면서 애원하며 중대원에게 빌었다.

 

우리 중대원들은 말년 병장을 감옥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대신 전역하는 날까지 판초우의를 쓰고 완전군장에 연병장을 하루 종일 도는 것으로 감옥에 가야할 것을 전역하는 날까지 반성하면 뉘우치게 하였다

 

윤일병 사건을 보면서 나의 군대에서 매맞았던 생각을 하면서....